코펜하겐 미술관 투어를 계획 중이라면 취향 껏 골라보길. 고전미술부터 현대미술, 디자인까지.

Copenhagen Contemporary

코펜하겐의 명물인 인어공주 동상을 찾는다면 눈을 크게 뜨고 다니라고 권하고 싶다. 실제 크기는 예상보다 훨씬 더 앙증맞으니까. 어쩔 수 없는 허탈함을 떨치기 위해 시선을 돌리면 인어 조각상 뒤편으로 외레순 해협이 흐르고, 더 멀리 커다란 창고형 건물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20세기 초반까지 각종 공장과 창고들이 모여 있던 레프샬레외엔(Refshale&oslash;en)섬이다. 이 섬은 중공업 도시였던 코펜하겐의 지난 역사를 증명한다. 그 중에서도 1872년부터 1996년까지 B&amp;W로 알려진 버마이스터 &amp; 웨인(Burmeister &amp; Wain)은 항구의 전면에 면한 드넓은 부지를 활용했다. B&amp;W는 조선업과 디젤엔진 제조에서 중추 역할을 한 기업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공장 노동자들이 주로 오가던 이곳에 문화 예술 공간들이 속속 자리 잡고 있다. 로열 오페라, 코펜하겐 스트리트 푸드 마켓 등이 이웃하며 새로운 트렌드 지형도를 그리고 있는 것. 인어공주 동상과 다른 의미에서 의외의 규모를 자랑하는 이 도시의 동시대 미술 또한 살필 수 있는 지역이다.
코펜하겐 컨템퍼러리는 기존의 미술관이 운영되던 페이퍼 아일랜드에서 레프샬레외엔으로 거처를 옮기며 B&amp;W의 용접장을 개조한 공간을 낙점했다. 총 7000㎡ 규모의 코펜하겐 컨템퍼러리는 높은 층고와 넓은 홀을 갖춘 덕분에 대형 설치 예술, 퍼포먼스, 기념비적인 비디오 작품을 전시할 때 특히 빛난다.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동시대 미술 전시장 중 하나로, 전시를 넘어 다양한 이벤트와 페스티벌, 예술가 워크숍, 관객 참여 프로그램이 이곳에 활기를 더한다. 복합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요즘 관람객에게 그야말로 오감 만족을 제공하는 예술 형식에 최적화되어 있는 셈이다. 2018년 레프샬레외엔에서 재개관한 이래 세계적인 스타 아티스트와 떠오르는 신진 예술가들의 전시가 사람들을 맞이했다. 카스텐 횔러, 라그나르 카르탄손, 엘름그린 &amp; 드라그셋, 빌 비올라, 사라 제, 슈퍼플렉스, 프란시스 알리스 등 그동안 코펜하겐 컨템퍼러리를 거친 작가들은 그 명성이 미술관의 규모에 뒤지지 않는다.
장기 전시 중인 제임스 터렐의 몰입형 설치 작품 &lt;Aftershock&gt; 때문에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다. 2022년 가을, 코펜하겐 컨템퍼러리를 위해 신규 제작한 이 작품은 일종의 &lsquo;감각 공간&rsquo;이다. 작품 외부에서 계단을 따라 감각 공간 내부에 입장하면 터렐의 상징과도 같은 빛과 색의 순환이 시작된다. 빛에 관한 예술이 아닌 빛 자체가 자신의 예술이라고 설명하는 예술가의 작업에 호응하듯 온몸을 맡기는 순간,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잠시나마 무아의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 외에도 방대한 미술관을 채우는 네다섯 개의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데, 올여름에 주목할 만한 전시는 &lt;The Length of the Horizon&gt;.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캐나다 국가관 대표 작가로 선정된 카프와니 키왕가의 개인전으로 8월 25일까지 이어진다. 개념, 색채, 사운드 등 쉴 틈 없는 예술 쇼크에 피로감이 엄습한다면 미술관 카페 &lsquo;코니-코니(Connie&ndash;Connie)&rsquo;에서 쉬어 가도 좋겠다. 온화한 녹색으로 벽을 칠해 눈이 편안해지는 이 카페에는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25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 카페 공간 연출을 맡은 디자인 스튜디오 타블로가 덴마크 기업 디네센의 협조를 받아 사용 후에 남은 목재로 스툴과 의자를 제작했다. 호주 디자이너 아리 프라세티야, 프랑스 건축가 폴 크루네, 벨기에 아티스트 아르노 우블렌 등 25명의 창작자는 모양, 높낮이, 색감도 모두 다른 개성 만점의 작품으로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데 일조했다.
add Refshalevej 173A, 1432 Copenhagen

간결함, 실용성, 자연 친화, 창의성. 고유의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북유럽 디자인의 힘은 공항에 내리는 순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기차역과 도서관, 우체국, 심지어 작은 카페에서도 이들에게 디자인은 결코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삶의 일부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의 역사적인 구역에 자리 잡은 디자인 박물관은 그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장소다.
현재의 디자인 박물관은 18세기에 왕립 공공 병원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코펜하겐에서 가장 훌륭한 로코코 양식 건물로 손꼽힌다. 1920년대에 건축가 이바르 벤트센(Ivar Bentsen)과 카레 클린트(Kaare Klint)가 이 빌딩을 박물관 용도로 개조했다. 클린트는 박물관 가구를 전부 디자인했고 그 전체 목록을 기록했다. 그는 박물관에 거주하면서 일했고,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의 스승으로 활동했다. 디자인 박물관의 소장품 연대기는 중세 후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고 가구, 도자기, 섬유와 의상, 유리 공예, 디지털 디자인까지 그 분야도 다채롭다. 동아시아의 유물 또한 이들의 컬렉션 일부를 이룬다. 종류나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이를 소개하기 위한 전시의 주제를 산업디자인, 패션, 환경 등 구체적으로 나눈다. 박물관이 특히 주목하는 키워드는 바로 &lsquo;미래&rsquo;. 2년간의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을 마친 후 2022년 6월 재개관하면서 건강, 환경, 정체성 등 미래 세대가 직면한 도전에 대한 디자인 솔루션을 고민하는 다양한 전시를 선보인 바 있다. 시노그래피(Scenography)도 허투루 하지 않는 이곳에서는 &lsquo;체어 터널&rsquo;이라고 불리는 구역이 유독 인기 만점. 덴마크 디자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의자들을 모아 놓은 공간이다. 이에 더해 체어 터널을 업그레이드한 새로운 상설 전시 &lt;Danish Modern&gt;이 오는 6월 14일 개막을 앞두고 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오랜 사랑을 받은 데니시 디자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 중심에 놓일 만한 오브제와 그것을 창작한 20세기의 덴마크 디자이너들을 돌아보는 전시라고. 세계 디자인 무대에서 활약한 디자이너들의 대표작, 개인 소장품, 아이디어와 스케치 등을 두루 모은다. 뵈르게 모겐센(B&oslash;rge Mogensen), 한스 J. 베그너(Hans J. Wegner), 핀 율(Finn Juhl),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 헨닝 코펠(Henning Koppel), 폴 헤닝센(Poul Henningsen) 등 쟁쟁한 인물들을 내세운 디자인 성찬이 벌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디자인 박물관에선 눈으로 감상만 하기보다 직접 경험해보자. 우선 박물관 내부의 도서관을 추천한다. 디자인과 공예 분야에서 북유럽 국가 중 가장 큰 규모로 모두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우아한 기능성과 현대적인 아름다움의 조화가 빛나는 공간이 날뛰는 도파민을 잠재우고, 숨어 있던 감수성을 일깨워줄지 모르니. 하지만 창밖의 녹음과 태양의 손짓을 거부하기 힘들다면 정원으로 나갈 차례다. 그뢰네가르덴, 디자인 박물관의 탁 트인 정원은 때로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며, 여름에는 피크닉 테이블을 놓고 노천 카페로 운영한다. 정원과 통하는 카페는 디자인 박물관 소속답게 그 이름도 &lsquo;포르마트(Format)&rsquo;. 커피는 물론 간단한 식사도 가능한 포르마트의 테이블 옆에는 위시본 체어(CH24), CH88, 그랑프리 체어, 팬톤 체어 등이 자유롭게 섞여 있다. 박물관 전시를 보고 난 뒤라면 그 가치가 남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어떤 명작에 앉아서 쉴지 마냥 즐거운 고민만 남았다.
add Bredgade 68, 1260 Copenhagen

뉘 칼스버그 미술관, 짧게는 글립토테크. 맞다. 당신 머릿속에 떠오른 바로 그 칼스버그 맥주 가문과 관련이 있다. 이곳은 창업주의 아들이자 2대 사장이었던 칼 야콥센 칼스버그의 컬렉션을 토대로 설립한 미술관이다. 그는 19세기 덴마크 양조업계의 거물이었고, 최고의 예술 후원자이자 열성적인 컬렉터였다. 1897년부터 대중에 개방한 글립토테크는 고대 이집트 유물과 로마, 그리스 조각부터 덴마크 황금시대 회화, 프랑스 인상주의 및 후기 인상주의 회화 등 1만 점 이상의 소장품을 자랑한다. 유구한 역사는 미술관 건축에서도 엿볼 수 있다. 미술관의 원래 건물은 당시 덴마크의 유명 건축가였던 빌헬름 달레루프(Vilhelm Dahlerup)가 설계했다. 이어 1906년 하크 캄프만(Hack Kampmann)과 1996년 헤닝 라르센(Henning Larsen)이 증축에 참여했다. 화려함과 웅장함, 현대적인 여유로움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곳의 포인트는 단연 내부의 윈터 가든이다. 천장의 돔에서 내리쬐는 자연광, 야자수와 이국적인 식물들, 분수대가 곳곳의 예술품과 근사하게 어우러지며 장관을 이룬다. 윈터 가든을 가로지르며 예술을 감상하는 동안 박물관은 박제된 과거를 무심히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근사한 시간 여행을 즐기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윈터 가든은 달레루프의 최초 설계안에서부터 계획된 공간이지만 1897년 개관 때 완공하지 못하고 1906년 증축과 함께 추가되었다. 시공이 지연되면서 석재 대신 철과 유리로 재료도 바뀌었다. 설립자인 칼 야콥센은 윈터 가든을 세상에 공개하면서 글립토테크가 평범한 박물관이 아닌 코펜하겐 시민을 위한 오아시스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 이유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라는 명칭 대신 그리스어로 조각을 뜻하는 &lsquo;글립토스&rsquo;와 무언가를 배우고 모이는 장소를 뜻하는 &lsquo;테케&rsquo;를 합쳐 클립토테크라고 부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발비 지역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기른 커다란 대추야자 나무도 옮겨 심었다. 북유럽 도시의 한복판에서 지중해의 하루를 만끽하게 하는 윈터 가든은 이름과 반대로 여름에 그 매력이 한층 돋보인다. 가든 중심부에 놓인 카이 닐센(Kai Nielsen)의 아이코닉한 대리석 조각 &lt;The Water Mother&gt;의 풍요로움과 관능미에 넋을 놓고 망중한을 즐기다 보면 한낮의 더위도 금세 잊힐 것. 1996년 글립토테크의 근현대 회화 컬렉션을 위해 개관한 헤닝 라르센 건물은 미술관의 다른 공간에 비해 확실히 모던하지만 기존의 건물과도 궤를 함께한다. 특히 옥상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경관이 압권. 코펜하겐이라는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 광장의 풍경을 한눈에 조망하는 즐거움은 옥상까지 올라가는 수고로움과 기꺼이 바꿀 만하다.
이처럼 매력적인 건축만큼이나 소장품도 수준급. 상당수의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입상과 두상뿐 아니라 지중해 지역 유물, 보기 드문 팔미라 제국(고대 시리아) 시대의 초상화 컬렉션도 꼭 둘러보길. 19세기 후반 덴마크 미술사를 쓴 주요한 화가들인 옌스 주엘, 크리스텐 쾨브케, 마르티누스 레르뷔에 등의 작품도 글립토테크의 소장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상설 전시 외에도 특별 기획전이 시기별로 달라지므로 미리 확인할 것.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는 무료로 입장 가능하니 방문에 참고하자.
add Dantes Plads 7, 1556 Copenhagen

Editor Lee Ga Jin

취향 맞춤 코펜하겐 미술관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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