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에 한 번, 전 세계의 아트 러버들을 설레게 하는 국제적인 아트 축제 베니스 비엔날레가 올해로 60회를 맞았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올해로 60회를 맞았다. 2년에 한 번, 전 세계의 아트 러버들이 여름휴가 루트에 또다시 베니스를 넣어야 할지 고심하게 하는 굵직한 예술 행사다. 4월 20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1월 24일까지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두 축을 이루는 것은 예술감독이 총괄하는 본 전시와 개별 국가관 전시. 올해의 본 전시는 아드리아누 페드로사(Adriano Pedrosa)가 진두지휘를 맡았다. 
상파울루 미술관 예술감독으로 재임 중인 그는 100년이 넘은 베니스 비엔날레 역사상 최초의 남미 출신 예술감독이라는 기록을 썼다. 페드로사는 그간 비서구 출신 예술가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다수의 전시를 기획해왔다. 그가 내세운 이번 비엔날레의 타이틀은 &lsquo;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Stranieri Ovunque- Foreigners Everywhere)&rsquo;. 아티스트 컬렉티브 클레어 퐁텐(Claire Fontaine)의 작품명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선보이고 있는 클레어 퐁텐은 2000년대 초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인종 차별과 외국인 혐오에 맞서 싸운 단체가 뿌린 전단지에서 &lsquo;Stranieri Ovunque&rsquo;라는 문장을 가져와 이를 네온 조각 작업으로 변환했다. 현재까지 60여 개 언어로 번역된 이 문장은 비엔날레 전시장 곳곳에도 설치될 예정. 아드리아누 페드로사는 &ldquo;첫째, 어디를 가든, 어디에 있든 항상 외국인을 만날 수 있다. 즉, 외국인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둘째, 어디에 있든 우리 모두 언제나 마음속 깊은 곳으로는 외국인&rdquo; 이라며 주제의 의미를 설명했다.
 전시를 위해 초대한 예술가만 무려 331명(팀). 그중 한국 작가로는 김윤신, 이강승, 이쾌대, 장우성이 이름을 올렸다. 김윤신, 이강승 작가 외에는 이미 고인이 된 이들로 시대, 성별, 장르를 초월하는 선택이다. 지아르디니와 아르세날레 두 곳에서 열리는 본 전시는 동시대 파트와 역사 파트 두 섹션으로 구성된다.

낯선 자들을 위한 헌사
동시대 파트는 &lsquo;낯선 것&rsquo;의 어원을 되새기며 출발한다. 라틴어 계열의 언어에서 낯선 것을 뜻하는 단어의 기원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공통적으로 익숙한 듯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lsquo;퀴어(Queer)&rsquo;라는 말의 첫 번째 뜻 역시 &lsquo;낯설다, 이상하다&rsquo;와 통한다. 여기에 착안해, 이번 전시는 퀴어 예술가, 독학 예술가, 아웃사이더 예술가, 민속 예술가, 선주민 예술가 등 성 정체성, 교육 여부, 지리적 혹은 역사적 이유로 주류 예술계에서 소외되거나 변방에서 묵묵히 활동해온 이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돌려준다. 참여 작가 선정에서도 원칙적으로 국제 규모의 전시에 참여한 적이 없는 사람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역사 파트는 20세기 모더니즘의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짚어본다. 유럽과 북미 모더니즘의 역사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및 아시아, 즉 글로벌 사우스의 모더니즘에 집중하는 것. 작품뿐 아니라 에세이, 연구 기록 등을 통해 식민주의 역사와 얽혀 있는 모더니즘의 이면을 밝힐 예정이다. 전시장은 세 개 공간으로 구획되어 &lsquo;초상&rsquo;, &lsquo;추상&rsquo;, &lsquo;20세기 이탈리아 디아스포라 예술&rsquo;에 대해 다룬다. 초상 섹션에는 1905년부터 1990년까지 활동한 112명의 회화, 드로잉, 조각 등을 선보인다. 인물이라는 아주 오래된 주제를 탐구해온 글로벌 사우스 출신 예술가들은 당시 여행이나 연구, 책 등을 통해 유럽의 모더니즘을 접했지만, 그와 동시에 각자의 개인적 경험과 성찰을 작품에 반영했다. 인물을 표현한 이들의 다채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수많은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추상 섹션에 모인 37명의 작가 대부분은 처음으로 함께 작품을 전시할 기회를 얻었다. 제3세계로 분류되던 시기의 한국과 싱가포르 예술가 일부도 이 섹션에 포함되었다. 페드로사 감독은 &ldquo;이 예상치 못한 병치를 통해 내가 제안한 다소 단순한 범주를 넘어 새로운 연결, 연합, 유사점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rdquo;고 당부했다. 20세기 이탈리아 디아스포라 예술 섹션의 경우, 이탈리아 1세대 혹은 2세대 예술가 40명이 주축을 이룬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는 물론 유럽과 미국 등 해외로 이주하거나 여행을 떠나 현지 문화와 깊은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써 모더니즘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공통점을 지닌 작가들이다. 개막식에서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브라질로 이주한 1942년생 작가 안나 마리아 마이올리노(Anna Maria Maiolino)와 파리에서 활동하는 1938년생 터키 출신 작가 닐 얄터(Nil Yalter)가 황금사자 평생공로상을 받는다. 두 사람 모두 정치적 상황으로 인한 이민과 이주를 경험했으며, 다양한 장르의 예술 행위를 통해 사회, 젠더, 계급 등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이들 외에도 참여 작가 중 최고 영예를 거머쥘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은사자상, 국가관 황금사자상 등의 주인공에 대한 시상도 함께 이뤄진다.

88개 국가관 전시
개별 국가의 이름을 걸고 전시를 선보이는 국가관 시스템과 수상 제도 때문에 베니스 비엔날레는 종종 &lsquo;미술 올림픽&rsquo;으로 불리기도 한다. 88개국이 참여 의사를 밝힌 올해 국가관 전시는 지아르디니를 중심으로 아르세날레 및 베니스 시내 일대에서 개최된다. 이번에 국가관 전시로 데뷔하는 4개 나라는 베냉,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동티모르. 니카라과, 파나마와 세네갈은 처음으로 자체 파빌리온을 마련했다. 한국관은 구정아 작가가 대표로 나선 전시 &lt;오도라마 시티&gt;로 꾸려진다. 향기(Odor)와 (드)라마(rama)를 결합한 단어 &lsquo;오도라마&rsquo;는 경계를 초월하는 향을 매개로 일명 &lsquo;한국 향기 여행&rsquo;을 제안한다. 이번 전시의 준비 과정에서는 국내 외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여러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에 관련한 사연을 모집했다. 수집한 &lsquo;향기 메모리&rsquo;를 기반으로 전문 조향사와 협업해 대한민국을 상상하게 할 16종류의 향을 개발하기도 했다. &lt;오도라마 시티&gt;는 향기, 소리, 온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구현할 만남과 우연, 공간과 관람자 사이의 에너지 연결을 모티브로 삼았다. 이를 통한 감각적 체험과 경계를 넘는 기억의 공동체를 준비했다. 한국관의 기획은 덴마크 아트 허브 코펜하겐 관장 야코브 파브리시우스와 쿤스트할 오르후스 큐레이터인 이설희가 공동 예술감독을 맡아 진행했다. 캐나다관의 카프와니 키왕가(Kapwani Kiwanga)도 눈에 띈다. 세계 아트 신에서 주목하는 키왕가는 인류학과 비교 종교학을 전공했으며, 퍼포먼스, 비디오, 사운드, 조각, 설치, 사진 등 여러 매체를 넘나든다. 역사적 아카이브에 대한 집요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회적, 정치적 영향을 새롭게 밝히는 작업을 해온 작가가 캐나다 국가관에서 보여줄 내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공인된 역사에 가려진 소외된 내러티브와 비대칭적인 권력의 내면을 미니멀리즘적으로 표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국관을 대표할 작가로 뽑힌 존 아캄프라(John Akomfrah)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인연이 깊다. 지금은 고인이 된 세계적인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가 총감독을 맡은 2015년 본 전시에서는 포경 산업의 잔인함과 수 세기 동안 더 나은 삶을 찾아 바다를 건넜던 이주민들의 모습을 병치시킨 거대한 영상 작업 &lt;Vertigo Sea&gt;(2015)를 설치했다. 이후 2019년 가나가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최초로 국가관 전시를 선보이며 마련한 전시 &lt;Ghana Freedom&gt;의 작가 6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아캄프라는 1957년 가나에서 태어나 1966년 영국으로 이주한 성장을 배경으로 두 나라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선정될 수 있었다. 영화와 멀티 채널 비디오 설치 작업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인종차별, 후기 식민주의, 글로벌 디아스포라, 기후변화 등 사회적 이슈를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낸다.

베니스를 물들일 예술 파노라마 비엔날레가 열리는 기간 동안 베니스는 예술섬 그 자체로 변신한다. 본 섬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전시, 이벤트, 파티 등 온갖 예술 행위가 산발적으로 일어난다. 공식 전시 외에도 보고시앙 재단에서 준비한 &lt;단색화&gt;전, 코레르 박물관에서 열릴 제니 홀저의 &lt;War Paintings&gt;, 비지 베일리와 브라이언 이노의 사운드 페인팅을 만나게 될 &lt;The Sound of Creation&gt; 등 굵직한 위성 전시만 40개가 넘는다. 사립 미술관과 재단에서 마련한 피에르 위그, 윌렘 드 쿠닝, 줄리 머레투 등 스타 작가들의 개인전도 대거 포진해 있다. 하지만 짧은 일정으로 베니스를 찾는 이들에겐 본 전시조차 제대로 훑어보기 힘든 것이 현실. 야심 차게 계획을 세우느니 GPS를 열심히 따라가도 길을 잃기 십상인 베니스의 작은 골목 골목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예술과의 의외의 만남을 기대하는 쪽이 차라리 더 마음 편할지 모르겠다. 오랜 세월, 급진적인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이자 새로운 담론을 실험하는 격전지로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온 베니스 비엔날레. 수많은 대형 국제 전시의 등장과 상업화로 신선함과 영향력이 후퇴했다는 뼈아픈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옛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과감하게 새 얼굴을 기용하고 변신을 꾀하고 있는 만큼 올해 행사에서도 단지 스타 예술가들의 궤적을 좇기보다는 주변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낯선 예술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12세기 독일의 스콜라 철학자 생 빅토르의 후고는 &ldquo;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rdquo;라고 썼다. 의역하자면, 결국 성숙한 인간은 모두 &lsquo;외국인/국외자&rsquo;로서의 감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예술을 통해 불현듯 그 낯선 감각을 일깨운다. 앞으로 7개월 남짓, 오직 예술로 꽉 채워질 그 섬에서 더욱 섬세하고, 한층 첨예한 방식으로 자신 안의 이방인과 조우하게 되기를.

Editor&nbsp;Lee Ga Jin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자기 안의 이방인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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