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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이라는 베일 뒤에 가득한 열정

"연기를 통해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감에 감사"하다는 배우 이제훈과의 진솔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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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트라이프 오버사이즈 재킷, 도트 패턴 행커치프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L'OFFICIEL HOMMES (이하 LH) 지난 연말 SBS 연기대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대상 배우’라는 수식어가 주는 무게감에 이제 좀 익숙해졌겠다.
이제훈 (이하 LJH) 대상을 받아 매우 기쁘면서도 스스로 늘 부족함이 많은 배우라고 생각했기에 ‘앞으로의 작품에 사람들이 조금 더 주목하겠구나. 더 잘해야겠다’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만큼 대상 배우라는 수식어의 무게는 묵직하다. 그래도 이 부담감을 원동력 삼아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더 즐
겁게 연기하려고 한다.

LH 아무래도 배우는 수상이나 시청률, 동원 관객 수처럼 타인의 평가와 인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직업 아닌가. 물론 오직 그런 것으로만 성취감을 가늠할 순 없겠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인가? 본인 내면의 잣대와 외부의 평가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나?
LJH 일에서는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하고 높은 잣대를 적용한다. 그래서 연기하는 매 순간 고도로 집중하고자 한다. 촬영 시간이 한 번 지나고 나면 물리적으로도 되돌리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공들이려고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숨 막히고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처절할 정도로 임한다. 그런 노력 끝에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면 비로소 성취감을 느낀다. 분명 배
우라는 직업이 외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때가 있는 반면 기대만큼 평가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럴때는 솔직히 아쉽고 슬프다. 하지만 그런 실망감까지 받아들여야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겠지. 내가 가진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하는 대신 다음 작품에서 만회하자는 마음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LH 그동안 경계 없는 활동을 펼쳐왔는데 드라마와 영화를 각각 어떤 즐거움과 배움의 기회로 삼는지?
LJH 예전 같은 제작 환경에서는 시간상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영화의 경우 한 컷 한 컷에 집중하고 연기도 다양하게 시도해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반면,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익숙한 현장에서 익숙한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하는 즐거움도 있고, 짧은 시간 내에 더 효율적으로 작업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는 드라마와 영화 환경이 많이 비슷해져서 작품이 공개
되는 방식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는 듯하다.

LH 오늘처럼 연기가 아닌 화보 촬영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
LJH 화보 촬영 때는 평소에 잘 시도하지 못하는 표정이나 색다른 포즈 등 여태까지 보여드리지 못한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한다. 이번 화보에서는 다양한 배경과 소품 등을 활용해 여러 변주가 있는 시도를 해봤는데 아주 신선하게 느껴졌고,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크다. 앞으로도 이런 경험이 많길 희망한다.

LH 올해 MBC에서 방영 예정인 <수사반장 1958>에서 또 한번 정의 구현에 나설 예정이라고. 현실에서도 인과응보를 믿는 쪽인가?
LJH 믿는다. 뿌린 씨앗은 반드시 거두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그간 다수의 작품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실제 연기를 하면서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는 걸 보면 내가 인과응보를 믿고, 인과응보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인 것은 분명한 듯하다.

LH 그런가 하면 개봉을 앞둔 영화 <탈주>에서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 움직이는 북한군 역할로 분했다. 북한군처럼 경험해본 적 없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공들이는 부분은?
LJH <탈주> 촬영 전에 실제 탈출을 경험한 분들을 직접 뵙고 대화를 나누거나, 탈출에 대한 압박과 고통을 겪은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찾아봤다. 그리고 ‘이 인물은 왜 이런 힘든 일을 겪으려고 할까?’ 등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더 깊게 빠지려고 노력했다. 보시는 분들이 내가 연기하는 인물에 공감하려면 나 자신부터 인물의 감정선, 사건의 인과관계를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인물을 연구하며 역할에 동화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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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프 니트 셔츠, 레더 팬츠, 레이어드한 랩스커트, 브라운 레더 타이, 스퀘어 토 뮬 모두 Bottega Veneta.

LH 이제훈의 얼굴에는 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한다. 연기 또한 로맨스, 액션, 장르물까지 이질감 없이
스며든다. 배우로서 자신이 지닌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LJH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과 작품을 대하는 태도의 깊이는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매 순간 더 잘하고 싶고 좀 더 좋은 평가,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연기에 대한 욕심과 열정도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이런 열정이 많은 부족한 점을 그나마 가리고 극복하면서 버티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

LH 그동안 맡은 배역 중에 본인과 가장 닮은 인물을 꼽는다면?
LJH 작품마다 배역에 최대치의 감정이입을 한다. 특히 촬영하는 동안에는 캐릭터와 내가 동일 인물이라고 믿고 싶고, 그가 나와 가장 비슷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촬영 중인 드라마 <수사반장 1958> 속 박영한이 제일 닮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다들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자꾸 같은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연기해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웃음).

LH 예전 인터뷰에서 “캐릭터란 도화지 위에 있는 밑그림일 뿐이고 배우는 더 자유롭게 색을 채워나가도 되겠더라. 그것이 내가 연기를 하면서 발견해낸 가장 큰 재미다”라고 말했다.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지, 요즘 연기하며 느끼는 가장 큰 재미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LJH 아직 변함없다. 이전에는 X축과 Y축만 있었다면 지금은 Z축까지 그려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인물의 성격, 외적인 모습,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는 과거의 이야기까지 좀 더 촘촘하고 세세하게 그리려고 한다는 뜻이다. 나 나름대로는 전작의 캐릭터를 답습하지 않고 최대한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려 노력하는데 정말 쉽지 않다. 예전에는 작품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워서 좌절할 때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내가 해야 하는 연기이니 후회 없이 하기 위해 모든걸 쏟아붓고, 그것을 즐기려고 하는 것 같다. 다음 날부터 연기를 할 수 없거나 갑자기 그만두게 되었을 때,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인지 연기에 몰입하는 순간 비로소 살아 숨 쉰다고 느낀다. 연기를 통해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다.

LH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공백기라고 할 만한 기간이 없는 것 같다. 배우 이제훈을 이토록 쉼 없이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LJH 영화와 드라마를 사랑하는 마음. 쉴 때는 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데, 힐링하기도 하지만 각성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여러 작품을 보면서 삶에 대해 깨닫기도 하고. 그러면서 다시 한번 나도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연기를 더 잘해내고 싶다고 다짐하며 장작을 불태우곤 한다. 그게 끊임없이 작품을 해나가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이 외에도 배우 이제훈의 전체 화보와 인터뷰가 담긴 <로피시엘 옴므 YK에디션> 2024년 봄/여름호는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온라인 서점과 주요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Creative Director Jeong Yun Kee
Editor Woo Lee Kyoung, Park So Yeon
Writer Lee Ga Jin
Photographer Kim Hee June
Stylist Shin Ji Hye(Intrend)
Hair Ahn Hong Moon
Makeup You Hye 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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