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에서 일했던 이력과 패션에 대한 넘치는 열정을 가진 오브제 디자이너 리 브룸의 미감은 화려하고 우아하다.

영국 출신 디자이너 리 브룸은 모던하면서도 화려한 우아함이 특징인 디자인으로 조명, 가구, 오브제는 물론 공간 전체에 독특한 힘을 부여한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선보인 지 이제 막 15년이 지났고, 축하의 샴페인을 터뜨리자마자 다시 분주한 일상으로 돌아간 브룸에게 대화를 청했다.

리 브룸의 뉴욕 펜트하우스 내 ‘Living Room’.  photograph by Stephen Kent Johnson.

L'OFFICIEL (이하 LH) 브랜드 론칭 15주년을 기념하는 첫 번째 단행본&lt;Fashioning Design : Lee Broom&gt;의 출간을 축하한다. 지난 커리어를 집약한 책을 손에 든 소감은 어떠한가? LEE BROOM (이하 LB) 아주 특별한 순간을 맞이했다. 나의 모든 작업이 담긴 인쇄본을 펼쳐놓거나 아름답게 엮인 한 권의 책을 바라보는 것은 독특한 경험이었다. 책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디자이너들은 과거의 작품을 돌아보기보다는 현재의 순간과 앞으로 출시할 미래의 작품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뒤를 돌아보니 그야말로 무장 해제될 수밖에 없었다. 거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고 묘사하고 싶은 정도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발전하고 진화했는지를 체감했다. 또한 나의 일, 특히 최근 프로젝트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도 깨달았다. 하나에 몰입하면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보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면에서 리졸리(Rizzoli)편집 팀이 내 작업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LH 표지에 &lsquo;비욘세의 선택&rsquo;으로도 유명한 &lsquo;Hanging Hoop&rsquo; 의자가 등장한다. 이 이미지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LB 장난기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이 의자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디자인이다. 디자인과 패션 감각을 강렬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표지 이미지를 위해 시도한 유일한 제품이다. 너무나 마음에 들어 다른 작업은 아예 검토하지도 않았다.
LH 책 제목에 들어간 패션과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LB 나는 항상 단어를 갖고 노는 것을 즐긴다. 특히 컬렉션이나 제품 이름을 지을 때 이러한 방식을 활용한다. 패션과 디자인이 내 경력 전체를 드러내기에 걸맞다고 느꼈다. 게다가 패션은 제품 디자이너로서의 활동에 영감을 주는 중요한 원천이기도 하다. 두 단어가 이 책을 관통하는 두 축 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게 여겼다.

리 브룸이 첫 번째로 펴낸 단행본 <Fashioning Design: Lee Broom>.

LH 당신 인생의 궤적을 그리는 주요 활동은 연기, 패션, 인테리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지금의 당신이 되는 데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LB 여러 디자인 분야의 훈련과 연기 경험이 교차하면서 작업 전반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패션업계에 종사하지는 않지만 패션에도 여전히 열정적이다.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재료와 제조 기술 면에서도 패션계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된다. 또한 모더니즘과 노스탤지어의 균형을 맞추고, 실루엣을 다시 상상하고, 형태와 모양을 여러모로 활용하면서 전통을 새롭고 혁신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에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LH 이제껏 달성한 수많은 프로젝트 중에서 주요 이정표를 추려본다면? LB 2022년에 기념한 15주년이 가장 확실한 이정표다. 그간 중요한 순간이 많았던 터라 가장 큰 성취를 꼽기는 매우 어렵다. 2017년 밀라노 가구박람회(Salone Del Mobile)에서 전시 &lt;Time Machine&gt;을 통해 10주년을 기념한 것도 기억난다. 이 전시는 이전 10년 동안 출시한 30점 이상의 가구, 조명 및 액세서리를 완전히 흰색으로만 재구성해 선보였다. 박람회장에 모더니즘적 재해석을 거친 회전목마를 설치해 브랜드의 진화하는 라이프 사이클을 보여주듯 회전시켰다. 아마도 그때를 시작으로 연극적 요소를 더한 전시를 선보이게 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독특한 경험은 버킹엄 궁전에서 여왕으로부터 퀸즈 어워드(The Queen&rsquo;s Awards forEnterprise)를 수상한 일이다. 
LH 디자이너로서 지난 세월 동안 쉼 없이 달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다면? LB 영감을 주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할 수 있는 한 새로운 것을 많이 경험하려고 노력한다. 흥미로운 전시회 방문이든 세계 탐험이든 말이다. 나는 다수의 아트 북과 디자인 북을 소장하고 있다. 이미지를 수집하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스케치한다. 어딜 가든 스케치북을 지니고 다니며 거의 매일 스케치한다. 하나의 아이디어나 특정 참고 자료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작업할 수 있는 모든 디자인 가능성을 검토한다. 계속해서 발전하고, 디자이너로서 자신을 밀어붙이고, 비즈니스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끈기가 필요하다. 힘들기도 하지만 언제나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실험하고 기존의 것을 바꾸려고 노력하는데, 바로 그 점 덕분에 흥미롭게 일할 수 있다.

2022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전시 <Divine Inspiration> 중 ‘Hail’. photograph by Luke Hayes.

LH 언젠가 &ldquo;상업성은 두렵지 않지만 평범함은 두렵다&rdquo;고 언급한 적이 있다. 어떤 이유로 그토록평범함을 경계하나? LB 작업할 때 완전함을 갖추고 어떤 식으로든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을 매우 중시한다. 혁신적이고 평범하지 않은 작품을 창작하고 싶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상업성을 피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작품을 발표할 창의적이고 영리한 방법을 찾아 상업성조차 디자이너라는 존재의 일부로 만들 수 있다. &lsquo;상업적&rsquo;이라는 표현은 어떤 아이디어의 가치를 약화하거나 별 특징이 없다는 생각을 상기시키기 때문에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평범한지 질문을 던진다. 이 업계에서 스스로 던져 볼만한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LH 공간에 우아함을 부여하는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LB 우아함은 실루엣과 질감에 관한 모든 것이다. 나는 제품과 공간을 구성할 때 흥미로운 실루엣을 즐겨 쓴다. 그런 뒤에 호화로운 질감을 층층이 쌓아 서로 균형을 이루도록 마무리한다. 
LH 당신이 꾸민 공간은 특정한 시대가 엿보이는 동시에 그 어떤 시대도 떠올릴 수 없다는 인상을 주곤 한다. 작업에 동시대성을 어떻게 반영하는가? LB 단지 미술과 디자인에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 역사 전반에 관심이 깊다. 그런 관심에서 꾸준한 영감을 받는데, 마치 내가 문 하나를 열면 다른 문이 열리는 것 같다. 예전에 내게 영향을 준 모든 것이 그렇게 이어지기 때문에 유독 큰 영향을 미친 한 시기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1920년대부터 1930년대, 그 중에서도 바우하우스 운동이 있던 때로 돌아가곤 한다. 디자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혁명적인 시기였다. 작업에 과거를 참고하긴 하지만 그 안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무엇을 창작할 때마다 항상 한 걸음 물러서서 그것을 관찰하고 동시대의 관점으로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lsquo;이것은 현재적인가? 우리에게 이것이 필요한가? 이것이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반영하는가?&rsquo;

2022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전시 <Divine Inspiration> 중 Altar’. photograph by Luke Hayes.

LH 당신이 디자인한 조명은 하나의 오브제라기보다 전체 공간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어떤 장치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조명을 보여주는 특유의 극적인 방식 때문일 수도 있겠다. 조명을 디자인할 때 어떻게 시작하는지 궁금하다. LB 조명은 나를 매료시킨다. 장식을 위해서든 기능적인 면에서든 좋은 조명을 설치하는 것은 모든 인테리어의 핵심이다. 결코 조명을 만든다는 의도를 가지고 디자인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그 순간 내게 영감을 준 어떤 것에서 출발하는 편이다. 조명을 만드는 일은 까다롭다. 미학적으로 비전이 강해야 하지만 조명이 기능적인 오브제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기술적 측면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두 요소를 결합하되 초기의 비전을 구현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나는 조명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어야 하고, 중심점이자 이야깃거리가 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종종 조명을 인테리어의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에 두고 전체를 디자인한다. 조명은 나중에 덧붙이는 것이 되면 안 된다. 
LH 조명뿐 아니라 가구에서도 선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직선과 곡선이 두루 단호하고 대담하고 선명하다. 이러한 선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LB 원, 사각형, 선은 디자인의 기본 요소이며 건축과 디자인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찾을 수 있는 흔적이다. 내가 왜 이러한 단순한 형태에 끌리는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원칙을 조합하는 일에는 아주 정확한 무언가가 있다. 아마도 내가 완벽주의자라는 사실이 이유가 될 것이다.
LH 질감의 중요성을 말했듯, 오브제의 구성에서 재료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다. 디자인을 실물로 구현하면서 재료는 어떻게 결정하나? LB 극적이고 표현성이 풍부한 조명을 만들기 위해 예상치 못한 재료를 즐겨 사용한다. 최근 발표한 &lsquo;Divine Inspiration&rsquo; 컬렉션을 위해 조각한 참나무, 압출 알루미늄, 석고, 제스모나이트 등 미지의 마감재를 통합해 사용했다. 디자이너이자 메이커로서 낯선 재료를 실험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아직 잘 모르는 영역을 탐험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새로운 재료가 전체 디자인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다. 때로는 어떤 재료로 작업하고 싶은지를 확신하며 일하고, 또 어떤 때에는 무게 혹은 마감 면에서 제품이 가장 잘 기능하게 하는 재료를 찾기도 한다.

‘White Street Sofa’, photograph  by Ben Anders.

LH 화물 운송 트럭에서 신작 조명을 소개하거나 온라인으로 생중계한 오케스트라의 공연과 함께마에스트로 체어를 공개한 것처럼 극적인 미장센으로 작업을 보여주는 데에 능하다. 세상에 신작을 선보일 때 염두에 두는 요소가 있다면? LB 사람들을 사로잡고 기억에 남는 경험을 연출하기를 좋아한다. 무대로 돌아가거나 패션과 관련해 직접적으로 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연극계에서 일했던 배경은 내 작업과 전시 방식에 무의식적인 영향을 미쳤다. 왜 디자인 전시가 예술이나 연극 퍼포먼스를 볼 때만큼 감정적 동요를 일으킬 수 없는지 모르겠다. 그런 연유로 내 쇼가 조금 더 본능적인 장면을 창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시도한다. 
LH 당신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당신의 라이프 스타일과 어떻게 공명하는가? LB 나는 근본적으로 미니멀리스트이고, 미니멀할수록 더 좋다고 생각한다. 상투적이고 지나치게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말이다. 나 자신이 미니멀리스트이므로 그 점이 디자인과 자연스럽게 공명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철학을 맥시멀리스트 인테리어에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 다. 모든 것은 편집과 재배열로 달라질 수 있다. 
LH 혹시 무언가 수집하는 취미도 있나? 당신의 애장품은 무엇인가? LB 많은 빈티지 제품과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편이다. 런던에 자체 공장과 물류 창고가 있어서 전 세계의 판매상에게 발견한 많은 것을 보관할 수 있다. 애장품 중 하나는 뉴욕의 펜트하우스에 설치한 바(Bar)다. 1980년대에 맞춤 제작한 오리지널 바인데 스티브 체이스(Steve Chase)가 라구나 비치에 위치한 체이스 레지던스를 위해 디자인 한 것이다. 체이스는 캘리포니아를 기반으로 활동한 미국 출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젝트와 유명인의 집을 다수 디자인했다. 
LH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공간은 어디인가? 가장 완벽한 공간에서 누리는 완벽한 순간을 묘사해줄 수 있나? LB 뉴욕과 런던을 오가며 지낸다. 가장 좋아하는 두 도시에서 시간을 나눠 쓸 수 있다니 매우 운이 좋다. 뉴욕 집 에서 거실은 쉴 수 있는 공간일 뿐 아니라 여흥을 즐길 수 있고 아주 사적인 소유물이나 가장 좋아하는 물건을 전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하다. 저녁 노을이 내려앉을 때 거실에 앉아 벽난로 앞에서 재즈를 듣고 마티니를 마시는 시간을 사랑한다.

2022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전시 <Divine Inspiration> 중 ‘Requiem’. photograph by Luke Hayes.

LH 사람들은 공간으로 개성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의식하지 못한 채 트렌드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투영하는 공간을 갖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LB 당신을 행복하게 하거나 평화롭게 느끼게 하는 오브제에 둘러싸여라. 집에서 정말로 원하는 것을 생각하면 나머지는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잡동사니가 쌓이는 것을 싫어한다. 내 집에서는 모든 것이 목적을 갖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고 느껴져야 한다. 그렇게 해 야 집중력이 생기고 행복하다. 집에서 즐겁게 노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요소도 디자인에 포함시킨다. 
LH 공간을 조성할 때 고려해야 하는 것을 몇 가지 조언한다면? LB 평면도만 참고하지 말고 가능하면 공간에 물리적으로 직접 표시하라. 또한 프로젝트의 끝이 아니라 시작 시점에 조명 설비를 시도하라. 조명은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소파, 식탁만큼 중요하고 심지어 더 중요하다. 규모를 재고하라. 작은 공간이라도 큰 오브제를 쓰고 규모를 확장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LH 창작자로서 품고 있는 가장 큰 야심은? LB 여전히 여러 야망을 가지고 있고 아직 탐구하지 않은 디자인, 창조하고 싶은 것이 많다. 연기부터 패션, 인테리어 그리고 제품 디자인에 이르는 지난 커리어의 궤적을 고려할 때 큰 의심 없이 다른 디자인 매체를 탐험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는 오페라를 디자인하고 창작하고 싶다. 
LH 2023년에는 한국에서 당신과 만날 수 있을까? 새로운 계획을 듣고 싶다. LB 현재 2024년에 나올 흥미로운 신제품에 매진하고 있다. 멋진 협업과 새로운 전시도 준비 중이다. 이제 더 많은 곳으로 여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 관련 계획도 세우고 있다. 나는 새로운 장소를 탐험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그러니 조만간 한국에 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22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전시 <Divine Inspiration> 중 ‘Pantheum’. photograph by Luke Hayes.

writer Lee Ga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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