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의 시작과 끝이 바로 자기 자신이므로.

L'OFFICEL (이하 LO) 촬영을 지켜봤는데, 왠지 좀 달라 보였다.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박은빈인 걸 알겠더라. PARK EUN BIN (이하 PEB) 그런가? 화보를 오랜만에 찍어서 그런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가 특이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다. 어떤 목소리가 연기하기에 좋은 목소리인지 고민하던 때도 있었고&hellip;.
LO 개인적으로는 &lt;비밀의 문&gt;에서 혜경궁 홍씨를 연기했을 때, 당신의 목소리가 가진 힘이 무척 잘 보였다. PEB 혜경궁 홍씨는 배우로서의 내 삶에 터닝 포인트를 가져다준 캐릭터다. 다섯 살부터 연기를 시작했는데, 사실 나는 무척 내성적인 아이였다. 물론 내가 원해서 배우 생활을 지속했지만, 끼 많고 에너지를 막힘 없이 발산하는 동료들을 볼 때마다 &lsquo;나는 저런 게 어려운 사람인데, 어쩌면 이 일이 적성에 안 맞는 거 아닐까? 재밌긴 한데 정말 잘하는 게 따로 있진 않을까?&rsquo; 같은 상념을 품곤 했다. 그런데 혜경궁 홍씨라는 캐릭터는 그런 것에서 벗어나 &lsquo;아, 연기는 재밌는 일이구나&rsquo;를 깨닫게 해줬다. 자연스레 연기를 대하는 방식도 바뀌게 되었고.
LO 자신을 믿게 된 걸까? PEB 그것보다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됐고, 그래서 내가 배우로서 할 수 있는 것,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됐다. 스스로를 구박하지 않고, 가까운 친구를 대하듯이 보았던 것 같다. 객관적으로, 그러나 너무 차갑지는 않게.
LO 박은빈은 언제나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이었을 것 같은 단단한 이미지가 있다. 심리학을 전공한 덕분일까? PEB 물론 영향이 있을 것이다. 아까 말했듯 배우로서의 터닝 포인트가 혜경궁 홍씨였다면 인간 박은빈의 터닝 포인트는 대학 시절이었다. 그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O 자세히 얘기해줄 수 있나? PEB 내가 어떤 사람인지 늘 알고 싶었지만, 외부에서는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세상이 주지 않는 답을 찾으려고 스스로 공부했던 시간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이었다. 내면을 잘 들여다보는 법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감정을 직면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인 것 같다. &lsquo;왜 나에게 이런 면이 있는 거야?&rsquo;라며 스스로 다그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 자신과의 관계야말로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를 조금씩 받아들였던 것 같다.
LO 그러고 보니 박은빈이 연기한 인물 중 분노하는 인간은 없었던 것 같다. PEB 화내는 장면을 연기한 적이야 있었겠지만, 내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적절히 해소하지 못하다 보니 연기를 하면서도 &lsquo;이게 맞나?&rsquo;라는 의구심에 휩싸였던 것 같다. 언제나 스스로를 잘 통제하고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생에는 반드시 예측 불가한 변수가 생기지 않나. 그럴 때마다 마주하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잘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안정적으로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물론 여전히 내게도 여린 부분이 있다. 예전에는 모른 척하고, 남들에게 들킬까 봐 숨겼던 부분이다. 지금은 그런 부분을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털어놓기도 한다. 참으로 오랜 시간을 거쳐서 찾은 탈출구이자 용기다.

LO 사람은 변한다고 믿나? PEB 대학생 시절 친구에게 사람이 변한다는 것에 대한 얘기를 했다. &ldquo;난 한결같은데 왜 주변 사람들은 변할까?&rdquo;라고. 그런데 그 친구가 이렇게 말 해줬다. &ldquo;너 나 처음 만났을 때 엄청 부담스러워했잖아.&rdquo; 그 친구가 내게 친근하게 다가와줬는데, 내가 낯설어하는 게 티가 났었나 보다. 이어서 &ldquo;너도 변하고 나도 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친구의 인연을 맺게 된 게 아니겠냐&rdquo;고 하더라. 너무 맞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변하고, 변화가 좋은 것을 가져오기도 한다.
LO 박은빈의 출연작 리스트를 살펴봤는데 2024년에는 방영된 드라마가 없더라. 이런 경우는 처음인 것 같은데. PEB 대신 1월에 있었던 팬 콘서트의 공연 실황 &lt;은빈노트: 디바&gt;를 영화관에서 상영했는데, 그걸 꼭 필모그래피에 포함시켰으면 좋겠다(웃음). 그런데 사실이다. 배우로 참여한 작품이 공개되지 않은 건 올해가 처음인 듯하다.
LO 작년에 &lt;이상한 변호사 우영우&gt;로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을 받았다. 보통 큰 성취 후에는 허망함이 따른다고 하는데 어땠나? PEB 우선, 나는 2023년을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해라고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lt;무인도의 디바&gt;도 기억날 거고. 정말 상을 받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내 직전에 나온 개인 수상자가 김혜자 선생님인데, 내가 어떻게&hellip;? 아무튼 어안이 벙벙한 채로 수상 소감을 말할 때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언젠가는 이런 상을 받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바랐거든. 그래서 &ldquo;나는 꿈을 이뤘다&rdquo;고 말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상을 받기 위해 살아온 것도, 연기한 것도 아니다.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그저 큰 상을 받았다는 뿌듯함이 전부다. 그래서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진 편이다. 내 기대보다 빨리 받게 됐고, 앞으로 부담감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겠다는 그런 홀가분함이다.
LO 상 받았을 때를 제외하고 &lsquo;내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있구나&rsquo; 하는 느낌을 받은 적 있나? PEB 이렇게 인터뷰할 때 &lsquo;잘했어요 도장&rsquo;을 받은 듯하다. 평소에 이런 질문을 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생각이 정돈되는 것 같기도 하고. 새삼스럽게 요즘 현장에서 내가 일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내 일상은 늘 단조롭고, 친구를 자주 만나거나 밖으로 돌아다니는 편도 아니다. 그런데 대체 왜 일하러 가는 것은 좋을까?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왜 늘 즐거울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결국 다 같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마음 하나로 모였기 때문이더라. 그러니까 현장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것 같다.

화이트 트위드 미니 원피스 Valentino, V 로고 메탈 이어링 Valentino Garavani.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딱이다. 정말이지 유난히 좋아하거나 덜 사랑한 캐릭터를 고를 수 없다. 모두 치열하게 얻은 친구들이다. 어찌 됐든 나는 주어진 시간 동안 그 인물과 친해지기 위해 부단히 애썼고, 그 마음이 똑같이 너무 소중하다.

LO 지금까지 맡은 인물 중 유독 사랑했던 건 누구인가? PEB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딱이다. 정말이지 유난히 좋아하거나 덜 사랑한 캐릭터를 고를 수 없다. 모두 치열하게 얻은 친구들이다. 어찌 됐든 나는 주어진 시간 동안 그 인물과 친해지기 위해 부단히 애썼고, 그 마음이 똑같이 너무 소중하다.
LO 촬영이 끝나면 바로 박은빈으로 돌아오는 편인가? PEB 스위치 온오프를 잘하냐고? 작품이 끝난 이후에 통제하지 못할 감정에 빠진다든가, 캐릭터에서 헤어나지 못한 적은 없다. 캐릭터만큼 혹은 그보다 훨씬 더 내 인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건강해야 연기도 건강하게 할 수 있으니까 박은빈이라는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해 여러모로 잘 관리하고 있다.
LO 2024년에 새롭게 도전한 것은? PEB 처음으로 나만의 세트리스트로 꽉 채운 팬 콘서트를 열었다. 많이 긴장했지만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었다.
LO 2022년부터 빙고(박은빈의 팬덤)들과의 만남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무대에 서는 것도 무척 즐거워 보였다. PEB 사실 팬 미팅이나 팬 콘서트를 열기 전에는 직접 빙고를 만난 적이 거의 없었다. 팬들을 눈앞에서 만나는 건 정말 다른 경험이었다. 동시대를 살면서 한 공간에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는 게 정말 소중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고, 나를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팬 미팅을 준비할 때는 스케줄에 치여서 힘들기도 한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두 시간 반 동안 힘이 마구 솟아난다.
LO 배우로는 드물게 아시아 6개국 팬 미팅 투어를 진행했는데 나라별로 팬들의 반응이 좀 다른 게 느껴졌나? PEB 벌써 2년 전인데도 기억이 난다. 처음 외국에 나가서 팬들을 만나는 건데, 그들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니까 큰 힘을 얻었다. 모든 곳에서 즐길 땐 즐기면서도, 내 말을 유심히 경청해주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해외에서 큰 사랑을 보여주는 팬들을 만나면서 많은 에너지를 받았고 매우 기뻤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시아 투어를 통해 큰 감동을 받았기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각 나라별로 그 나라 노래를 준비해 불러드렸다. 그리고 투어 경험을 토대로 &lt;무인도의 디바&gt;도 잘 마칠 수 있었다.
LO 박은빈, 배우 안 했으면 뭐 했을까? PEB 오늘도 메이크업 받으면서 그 생각을 했다. 난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도 컸다. 그런 나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건 배우밖에 없지 않을까. 심지어 늘 새롭고 재밌다.

Creative Director&nbsp;Jeong Yun Kee Editor&nbsp;Woo Lee Kyoung, Park So Yeon Writer&nbsp;Park Gemma Photographer&nbsp;Jang Duk Hwa stylist&nbsp;Shin Ji Hye(Intrend) hair&nbsp;Bae Kyung Hwa makeup&nbsp;Lee Yun Yeong(Prance) assistant&nbsp;Han Seung Hee, Mo Hye Yeong, Cho Yun A(Intrend), Kim Se Jeong

배우 박은빈,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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